알드노아 제로 (2015) 12 END

  이렇게 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슬레인이 져줬기 때문이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슬레인이 항복을 결단했기에 평화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어세일럼공주의 결단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슬레인이 끝까지 물고 늘어졌으면 전쟁은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렘리나공주를 포함한 박해를 받았던 계급은 슬레인을 지지했기때문이었습니다. 특히나 박해를 받았던 계급에게는 존경받음은 물론이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을 지도 모릅니다. 2쿨 초반에 하크라이트가 슬레인에게 충성을 바쳤던 것, 슬레인의 편의를 위해 했던 모든 행동과 마지막 화에서 했던 행동과 하트라이트를 따라 전투에 참여한 스텔스부대. 이들을 떠올려보면 슬레인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상징은 유일한 희망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갑작스레 기회가 주워줬기에 자신을 양아들로 받아들여 준 자츠바움 백작을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이 자츠바움 백작의 뒤를 이은 것이었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비인도적인 행동이기도 했지만 애초 예정대로 이나호를 죽였다면 이런 사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느리긴 하더라도 자신의 본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세일럼 공주의 직속 시녀인 에델리조와의 대화로 인해 이나호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위험성은 미리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라면 슬레인은 이나호를 죽이려 했을 것입니다. 또한, 슬레인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것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든 시간은 오래 걸릴 일이었습니다. 막상 지구를 점령하더라도 당장에 계급이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제작진이 보여준 슬레인의 존재는 머리도 좋으며 야심도 있고 박해를 받은 계급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슬레인과 마찬가지로 박해를 받았던 비주류 계급에게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슬레인은 그들, 자신을 지지하는 비주류 계급을 등용하여 권한을 주고 활용하였다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했다면 주인공은 이나호가 아닌 슬레인이 되었겠죠.)

  이나호와 슬레인의 전투장면은 마지막 화 답게 화려했습니다. 다만 어세일럼 공주의 선언 이후 슬레인은 렘리나 공주와 하트라이트를 포함한 월면기지의 사람들을 퇴각을 명령하며 자신은 월면기지에 남아 월면기지를 폭파하는 것을 봐서는 이미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조차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렘리나 공주가 슬레인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욕심이 원인이었습니다. 어세일럼 공주를 슬레인의 곁에서 떼어놓는다면 슬레인이 자신을 바라봐줄 거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반대로 작용하여  슬레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며 죽음을 각오하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했다고까지 할 수 있겠습니다.

  11화에서 어세일럼공주가 이나호에게 했던 말이 12화에서 밝혀졌습니다. ‘슬레인을, 슬레인 트로이어드를 구해주세요. 그를 불행의 연쇄에서... 제발...’ 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어세일럼 공주의 무능함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슬레인의 불행이 어디에서 왔는가. 그에 대해 생각해봤는가. 현실은 어떤가. 왜 슬레인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나.' 이런 생각을 해봤는지 의구심이 들 발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이나호가 어떻게 슬레인을 구할 수 있을지 알긴 했을까요. 어세일럼 공주 과연 평화를 사랑하며 친절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순수하기에 가혹하기만 할 뿐인 사람인지...

  어세일럼 공주는 결국 이나호의 능력, 사회적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불가능한 행동을 요구했으며, 슬레인이 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긴 했을까요. 슬레인을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했으며 공주암살을 시도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은 것으로 되면서 평생 감옥에 갇혀 살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과연 슬레인을 불행의 연쇄에서 구해낸 것이 되는 것일까요. 그저 기존 사회에 격리되어 인간다운 삶은 포기하게 되며, 기존 사회에 존재했던 불행의 개념과 동시에 행복의 개념조차 없는 작은 세상에 혼자 존재하게 된 것. 그 외의 아무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죄를 지었다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합당한 처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슬레인에게 있어서는 죽음보다 더 가혹한 환경일 테니까요.